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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 자유경쟁과 독과점 사이 0
등록자 CARLNC 작성일자 2021-02-23 오후 4:53:27


기존 업계는 “독과점 막아야”

현대는 “소비자 보호한다”

현대의 중고차시장 진입, 약인가 독인가




중고차매매업은 지난 2013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대기업이 진출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러나 2019년에 적합업종 지정 기한이 만료됐고, 동반성장위원회는 ‘중고차매매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대기업이 중고차 매매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약 20조 원 규모의 중고차 시장에 손을 대는 기업에 대한 궁금증이 커질 무렵, 현대차그룹이 손을 들고 나섰다.

물류를 담당하는 현대글로비스가 중고차 시장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중고차 업계 종사자들과 대기업, 소비자 간의 갈등이 격해지고 있다.

매매업 종사자는 분노할 만한데, 소비자들은 되레 손을 들어 환영하고 있다. 무슨 일일까?



◆ 중고차 거래, ‘당근’보다 어렵고 ‘신차구입’보다 쉽다

여느 소비재와 마찬가지로 자동차도 새 제품을 한 번 구입하고 나면 중고가 된다.

소비자는 때로 다른 신제품이 눈에 들거나, 자동차의 몇몇 부분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등 여러 이유로 가지고 있는 차를 처분하고 새 차 구입을 염두에 둔다.

하지만 모든 운전자들이 새 차만을 구입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이 타고 다니던 중고차는 연식과 주행거리, 차량 상태에 따라 가격이 신차보다 저렴하게 시장에 나온다. 소비자들은 좀 더 현명하고 경제적인 소비활동의 일환으로 신차 대신 중고차를 구입한다.

중고차와 중고 컴퓨터는 기본적으로 같은 종류의 물건이다.

하지만 개인 재산 기준으로 보면 자동차는 집 다음으로 비싼 물건이기 때문에 소비재보다는 재산으로 취급된다.

그렇기 때문에 중고차를 판매하려는 사람은 가격을 최대한 높이려 하고, 구입하려는 사람은 가능한 더 저렴하게 사는 것을 원한다.

얼마간의 의견충돌이나 거래 무산은 있겠지만, 어쨌든 판매자와 구매자가 만족하는 가격이 정해지면 거래는 성사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가격대가 수백만 원대 이상으로 높고 조심히 다뤄야 하는 물건이기 때문에, 중고차 거래는 전문 매매업자가 중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고차 매매업자에게서 원하는 차량을 구입하는 방법은 편의점에서 라면을 사는 것보다는 약간 복잡하다.

먼저 온라인 사이트에 등록된 매물 중 마음에 드는 차량을 확인하고 딜러에게 연락을 해 약속을 잡는다.

딜러는 판매하려는 차량의 성능·상태점검기록부를 준비해 차량 제원, 상태, 사고 여부 등을 구매예정자에게 고지한다.



구매자는 딜러가 보여주는 차량이 처음 확인한 물건이 맞는지 제조사, 모델명, 연식, 엔진형식, 옵션사양 등을 확인한다.

원하는 물건과 가격, 상태가 만족스럽다면 계약서를 작성하고 차량 대금을 결제한다.
 
이후에는 자동차보험 가입, 자동차 등록 관련서류 접수, 취등록세 납부 등 얼마간의 과정이 더 남아 있는데, 대금을 결제하고 자동차 키를 손에 쥐었다면 일단 거래는 마친 것으로 보면 된다.

소비자가 눈을 돌린 이유, ‘X팔이’

그런데 중고 제품, 특히 값비싼 자동차를 중고로 구입하려는 사람은 일정 부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뜻하지 않게, 혹은 판매자가 알고 있었던 문제를 구입 당시 구매자가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차량에 문제가 있다면 판매자가 구매자에게 고지해야 하지만, 국내 중고차 시장이 지금 상태까지 악화된 것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 과정들에 ‘거짓말’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본지에서도 지난 여름 길었던 홍수 이후 시장에 침수차가 쏟아질 것을 우려한 기사를 낸 바 있다.

심각한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가 중고차를 구입할 때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시장 전체에 시나브로 확산되며 국내 중고차 시장은 소위 ‘레몬 시장’이 된 지 오래다.

레몬 시장은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제품에 대한 정보가 맞지 않는 비대칭성이 발견되면 상호간 신뢰도가 떨어지고, 점점 품질이 낮은 제품만 시장에 돌게 되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구매자 A는 중고차 매매업자 B로부터 연식 10년, 주행거리 7만km 정도인 차량을 소개받았다.

해당 차량의 가격은 1,000만 원이었다.

A는 연식 대비 주행거리가 길지 않아 의심했지만, B는 이전 운전자가 아끼던 차량이라며 가격 할인, 사은품 제공 등을 제안해 구입을 종용했고, 이를 믿은 A는 50만 원 할인받은 950만 원에 해당 차량을 구입했다.



2. ‌그런데 구입 후 한 달여가 지났을 때 차량 여기저기서 문제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브레이크패드는 수명이 다 해 인디케이터가 디스크에 닿아 소음을 냈고, 가속 페달을 깊게 밟아도 제 속도를 내지 못했다.

각종 오일류를 교환했지만 증상은 여전했다. 나중에 정비소에서 차량의 각종 부품들의 상태와 교체 이력을 살펴보니, 주행거리를 조작해 10만km 이상 달린 차량을 속인 것이다.

3. ‌사기를 당했다는 생각에 A는 매매업자 B를 찾아가 환불을 요구했다. 하지만 B는 “나는 조작하지 않았다.

이전 소유자가 했거나 다른 누군가가 했을 것”이라며 환불을 거부했다. B는 이 차량을 구입할 당시 사고이력을 검색해 무사고 차량인 것은 확인했지만, 설마 주행거리를 속였을 것이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차량을 살펴본 정비사 C는 “A/S 업체 전산자료를 보면 주행거리가 바뀌었는지 알 수 있다”라고 알려줬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이런 상황이 시장 전체에 만연하다면 그 시장경제는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현재 국내 중고차 시장이 이런 상태에 빠져 있다고 믿고 있다.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중고차 사기를 당했다는 글이 올라오고, 유튜브 중고차 딜러들은 저마다 악질 자동차 매매업자를 처단하는 영상과 더불어 자신의 업체를 슬며시 홍보하고 있다.

실로 ‘아비규환’이 아닐 수 없다.



중고차 시장이 소비자 신임을 잃은 또 하나의 이유는 ‘허위매물’이다.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다면 지금 검색창에 ‘중고차’를 검색하고, 나열되는 중고차 매매 사이트 가운데 하나를 들어가 보면 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검색한 결과로는 한 사이트에서 2019년 10월 출고돼 4,775km밖에 달리지 않은 제네시스 G80 3.3 GDI 차량을 무려 530만 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심지어 36개월 할부로 사면 월 15만 원이면 G80을 살 수 있다. 이는 당연히 허위매물이다.

실제로 이 가격이 맞다 하더라도 ‘경매차량이라 할부금을 내야 한다’는 식의 추가비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심각한 고장이 있어 운행이 불가능하거나 침수차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행태가 시장 전반에 만연하다 보니, 중고차 매매업자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도는 바닥을 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신뢰도는 잃지 않은 대기업이 시장에 진입해 중고차 인증·판매를 하겠다고 나서니, 소비자로서는 반가울 수밖에 없다.



중고차를 사려는 소비자들은 비록 대기업의 진입으로 가격대는 올라가겠지만 ‘믿고 살 수 있는’ 대기업의 이미지 값이라 생각하고 추가금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 것이다.

불 난 중고차 시장 향한 대기업의 부채질

중고차업계는 자동차매매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 해제된 이후 자신들의 사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2019년 11월 중고차업계가 동반성장위원회에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신청을 했지만, 위원회는 부적합 의견을 내고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위원회가 부적합하다는 판단을 한 것은 중고차매매업이 처음이다.

개인 사업체가 영세한 것은 맞지만, 산업 전체 규모가 커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기에 무리가 있다는 것이 위원회의 판단이다.

그런 와중에 대기업의 시장 침투가 시작된다는 소식이 나돌았다.

현대자동차가 중고차를 직접 판매하겠다며 나선 것이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중고차매매업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가운데, 현대차뿐 아니라 GS, SK, 카카오 등도 중고차 시장 진출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이에 중고차 업계는 크게 반발하고 나섰고, 소비자들은 두 손을 들어 환영을 했다.

하지만 중고차업계 요구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위원회의 의견은 중기부에 전달됐고, 중기부는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생계형적합업종심의위원회를 통해 결론을 내야 한다.

다만 12월 중순 현재까지 답이 나오지 않고 있는데, 전국에 만연한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늦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의 중고차시장 진입에 대해 중소벤처기업부 박영선 장관은 ‘프로토콜’을 제안한 바 있다.

규약을 뜻하는 프로토콜은 블록체인 참여자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룰을 정하는 단어로 사용하기도 한다.

박영선 장관은 중고차시장에 이 모델을 대입해 정보를 공유해 서로를 견제할 수 있게 하자는 의견이다.

이에 대해 지난해 10월 8일 국정감사에서 현대차 김동욱 전무는 프로토콜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업범위를 중기부,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이하 매매사업조합) 등과 협의할 수 있다.

프로토콜은 중고차 거래 관련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도 있다”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완성차업계와 중고차업계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규약을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대기업 측이 먼저 제시한 상생 방안은 자신들이 출고 6년, 주행거리 12만km 이하 차량으로 범위를 제한하겠다는 것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의견은 일반 소비자들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만약 올해부터 현대차가 중고차 거래 플랫폼을 구축한다면 2014년식 이후 출고돼 주행거리 12만km가 안 된 차량만 판매를 담당하겠다는 것이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어리둥절했다.

사실상 중고차 시장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범위만 가져가겠다는 것인데, 두 살 먹은 어린애가 아닌 이상 중고차업계가 이 제안을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공생은커녕 ‘상생 방안’을 빙자한 독과점과 다를 바가 없다.



소비자 보호인가, 생태계 파괴인가

아직 현대차가 중고차 시장에 어떻게 진입할지 확정되지 않은 가운데, 완성차업계와 중고차업계의 충돌은 지난해 12월 7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이하 산자위)에서 ‘대기업의 중고자동차 매매시장 진출 관련 공청회’에서 더욱 거세졌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이하 KAMA), 매매사업조합, 자동차10년타기시민연합(이하 10년타기연합), K카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공청회에서는 현대자동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에 대한 의견이 팽팽한 대립을 이뤘다.

완성차 업계는 찬성, 중고차 업계는 반대 입장이었는데, 그 이유가 묘하다.

완성차 업계에서는 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내세웠고, 중고차 업계는 대기업이 생태계를 파괴한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세 시간 가까이 진행된 공청회에서 명확한 해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KAMA가 대변한 완성차 업계, 매매사업조합과 10년타기연합이 대변한 중고차 업계의 골은 공청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깊어져 갔다.

공정회에 참가한 국회의원들은 질의를 통해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을 뒤흔드는 형세 자체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다.

더불어민주당 김경만 의원은 “3만여 자동차 부품업체의 협력과 지원이 완성차 업체의 현재를 있게 한 원동력이다.

그런데 국내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기업이 유통망까지 침투하면 중고차 매매업 5만여 종사자와 가족의 생계가 불안해질 수 있고, 나아가 가격정찰제 등으로 가격이 상승될 우려도 있다”라고 말했다.

정태호 의원도 질의를 통해 “미국에서는 완성차 업체는 딜러를 하지 않는다.

대기업이 진입하면 대부분의 양질 매물을 쓸어가며 사실상 시장을 독점하게 된다. 당연히 생계의 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다”라고 우려했다.

공청회 막바지에 한 진술인은 “소비자들이 오죽했으면 미운 대기업의 손을 들어줬겠나. 이번 기회에 업계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이 나왔으면 좋겠다.

중고차업계도 살고 소비자 권리도 보호를 받는 전환의 기회가 되기 바란다”라고 언급했다.



이미 레몬 시장이 된 중고차 시장이 정화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시장의 정화를 대기업의 손에 맡기게 되면,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어떤 판매자를 맞이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 ‘제대로 된’ 중고차를 구입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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